[역사툰] 서양 과학기술을 도입한 정조 임금과 다산 정약용
by 해삼 | 18.11.10 10:41 | 612 hit




진하 겸 사은 정사正使 이은李溵, 부사副使 서호수徐浩修 등이 장계하였다. 대략 이르기를 “……  삼가 생각건대, 『사고전서』는 실로 『도서집성』에 의거하여 그 규모를 확대한 것이니, 『도서집성』이 바로 『사고전서』의 원본原本입니다.  이미 『사고전서』를 구득하지 못할 바에는 먼저 『도서집성』을 사오고 나서 다시 공역이 끝나기를 기다려 계속 『사고전서』를 구입하여 오는 것도 불가할 것이 없을 것 같기에,  서반(序班:조선 사신을 접대하던 청나라 하급관리)들에게 문의하여 『고금도서집성』을 찾아냈는데, 모두 5천 20권에 5백 2갑匣이었습니다. 그 값으로 은자銀子 2천 1백 50냥을 지급했는데, 지금 막 실려 오고 있습니다.” 하였다.  -『정조실록』 권3, 정조 1년 2월 24일







도서집성의 제목을 5022번이나 쓴 송하 조윤형

원교 이광사의 제자인 송하 조윤형은 글씨를 잘 하기로 소문이 났다. 그의 아버지인 조명교도 글씨를 잘 썼다. 조윤형의 사위는 조선 말기 대문장가이자, 서예가인 자하 신위였다.

당시, 왕실에서는 원나라의 조맹부체(안평대군이 조맹부체를 잘 썼다고 한다)를 전수받고, 대대로 익혀 왔다. 하지만, 정조 임금은 조맹부체보다는 당나라 시대 유공권체와 안진경체를 좋아했다고 한다. 조윤형이 안진경체와 유공권체를 잘 써서, 정조의 총애를 받은 것이다.

도서집성이 들어오자, 조윤형은 5022권이나 되는 책의 제목을 하나하나, 사자(寫字: 글자를 적음)하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40일을 꼬박 매달리고서, 조윤형은 이 작업을 끝낼 수 있었다. 









의 표지와 내용. 네 글자는 조윤형이 쓴 것이고, 내용에 보이는 도장 4개(가장 위에 2개는 제외)은 모두, 정조 임금의 소장인이다.






송하 조윤형의 글씨. 당나라 시인 우세남의 【초명응교시,初晴應教詩】를 적은 시첩이다. 조윤형이 송나라 미불체로 쓴 행서이다. 初日明燕館,新溜滿梁地。歸雲半入嶺,殘滴尚懸枝。(일본 천리대학 도서관 소장)





이 이야기는 이덕무의 절친이었던 유득공의 저서 에 전하는 내용이다. (참고 문헌: 18세기 동아시아의 백과전서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노대환 동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을 완독한 유일한 인물, 이덕무







다산 정약용, 을 토대로 거중기를 만들다.





수원화성에서 사용된 , , 를 재현한 디오라마(diorama)






서양과학의 힘을 알게 된 정약용은 이후, 이란 관청을 세울 것을 주장한다. 이용감에 수학과 중국어에 능한 관리를 집중 배치시키고, 이들이 정기적으로 북경을 방문하여 생산 기술을 익히고 생산 기구를 구입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자신이 가지고 온 기구를 수도권에서 시험 제작하여 사용해 보고, 성과가 좋으면 이를 전국으로 확대 보급시키는 방안이었다. 그리고 실적이 좋은 관리에게 승진의 혜택을 부여하면 이들이 더욱 좋은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분발할 것으로 기대하였다고 한다.(참고 문헌: 국사편찬위원회-우리 역사넷)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해보면, 의 주인공 테렌츠(Johann Terrenz Schreck, 鄧玉函, 1576~1630)는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의 친구이자 동료라는 사실이다. 1603년 이탈리아 Padua 대학의 학생이 된 테렌츠는 그곳에서 갈릴레이를 만난 것이다. 테렌츠는 의학을 전공했지만, 갈릴레이를 만나 천문학에도 정통할 수 있었다. 또, 테렌츠는 유명 천문학자 케플러와도 친분이 있었다. 천문학에 의문이 생길때마다, 그는 케플러에게 편지를 보내 의문점을 해소하기도 했다.


테렌츠는 어학에도 매우 뛰어났는데 라틴어, 독일어, 영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고대 그리스어, 히브리어, 고대 아람어까지 구사할 수 있는 멀티링구얼이었다. 예수회 신부가 된 테렌츠는 마테오 리치의 부름을 받아, 마카오로 가서 중국어를 배웠다.


중국 본토로 들어간 후엔 본격적으로 그는 중국인들에게 천문학을 전수하기도 하며, 서양의 여러 과학 기술들을 중국어로 번역하며 책을 만들기도 했다. 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천주교 신부 테렌츠의 설계이론을 정약용이 직접 조선에서 구현했으니, 다산 정약용이 한때, 천주교 신앙에 관심을 지녔던 인물이었던 점을 상기해보면 만감이 교차하는 사건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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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벽하거사 2018.11.11 16:01
정조가 일찍 죽은게 우리나라 역사에 영향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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