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조조의 사후 비화
by 흑2 | 18.04.16 03:43 | 1,785 hit





모바일SLG 삼국지M의 간판모델로 등장한 조조
216년 조조는 업에서 위왕(魏王)으로 봉해져 사실상의 새로운 왕조를 개창했지만 220년에 낙양에서 사망하였다.
조비(曹丕)가 뒤를 이어 낙양에서 선양의 형식으로 헌제의 양위를 받아 위왕조를 세웠다.
문제는 경제적인 부나 가문에 관계없이 유능한 인재를 선발한다는 새로운 관리임용방식인 구품관인법을 시행하여 관료를 육성하려 하였지만
이미 각지에서 기반을 굳힌 호족세력이 오히려 이를 기반으로 하여 관직을 독점하였고, 황제권은 이에 따라 위축되었다.
이렇게 구품관인법을 계기로 관료기구에 편입되어 대대로 여러가지 정치상의 특권을 획득한 일군의 호족들은
이후 명문(名門)·대족(大族)으로 성장하여 발언권을 강화해가면서 후일 문벌귀족의 선구를 이루었다.


위왕조가 수립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유비는 다음해 성도에서 즉위식을 거행하였다.
전한 경제의 자손이라는 점이 유비의 명분상의 이점이었기 때문에 한으로 국호를 삼았다.
이를 전·후한과 구분하여 촉한(蜀漢)이라 부른다. 유비정권은 화북에서 이동해온 유비의 측근인물들과 사천 토착호족과의 연합정권이었는데,
풍부한 경제적을 바탕으로 귀주와 운남방면으로 세력을 확장시켰다.
그러나 유비와 제갈량이 사망한 후 급속히 국력이 쇠퇴해 263년 위왕조에게 멸망당했다.




한편 오에서는 조비가 즉위하자 아직 자립할 만큼의 국력이 되지 않아 일단 신하로서 복속하여 오왕(吳王)에 봉해졌다.
결국 위의 책봉체제에 편입된 것이다.
그러나 국정이 안정되자 손권은 222년에 황무(黃武)라는 독자의 연호를 세우고 오왕조를 세웠다.
수도를 건업(建 )으로 옮긴 오는 강동의 토착호족의 협력을 얻어 가능한 것이었는데,
당시 오의 문벌은 주씨(朱氏), 육씨(陸氏), 고씨(顧氏), 장씨(張氏) 등의 4성이었다.
이들은 사병과 독자적인 영지를 보유한 대세력으로 발전했고, 황제권은 이와 반비례해 약화되었다.
결국 280년에 위의 뒤를 이은 서진(西晉)에 의해 멸망되었다.





그러나 오왕조 시기에 화북의 위왕조에 대항해 강남을 적극적으로 개발하여
후일 남조가 장기간 화북의 이민족 정권에 대항할 수 있는 기반을 형성하였다.
오왕조는 온난한 기후와 풍부한 수량을 갖춘 이 지역에서 치수와 배수 및 간척과 농경지의 개간에 주력함으로써
전란을 피해 강남으로 도피해온 이주민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또한 새롭게 개착된 운하망은 배수와 물자의 수송에 도움을 주어 상업과 수공업이 크게 발달하였다.
수도인 건업은 강남 경제의 중심지로서 동남아시아의 상선을 물론 로마제국의 무역선도 출입하는 국제도시로서 성장하였다.
이후 서진 말년에 건강(建康)이라는 명칭으로 바뀌었는데,
이후 남조시대 강남정권의 거점도 이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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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공병포반장 2018.04.16 20:11
희대의 간웅 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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